뮤지컬 ‘히즈라이프'(His Life)는 어떤 작품인가?

이 작품은 탄생에서 부활,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라는 친숙한 스토리를 크리스천 팝 뮤지컬이라는 현대적 감각의 종합 예술로 그려낸 것으로, 1989년 첫 공연을 시작으로 텍사스 주와 미주리 주에서 2002년 시즌까지 약 13년간 공연하면서 총 3, 900만 명이 관람하였으며, 또한 미국 가스펠 뮤직협회의 ‘ The Dove Awar d’ 에서 ’ Best Pr oduct i on of t he Year ‘ 와 ‘ Best Mal e Ar t i st ‘ 를 포함해서 그랑프리를 5년 연속 수상하였고, 기독교적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2차례 공연을 가질 정도로 그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입니다. 아울러 뉴욕타임즈는 이 작품의 조명 효과 등 예술성이 라스베가스 쇼에 버금가는 수준이며 ‘ 포스트모던 시대의 효과적 선교 전략’ 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.

 

이 작품이 뉴욕에 오기까지

세계적인 뮤지컬 ‘ 히즈라이프’ 가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 뉴욕에 입성하게 된 데는 평소에 ‘ 백 마디 말보다 한 편의 뮤지컬이 더 낫다’ 면서 문화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지녔던 프라미스교회(구 순복음뉴욕교회) 담임 김 남수 목사의 열정과 인내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.
1996년 쯤에 김 목사가 교단 목회자 몇 분과 함께 미주리 주의 휴양도시 브랜슨(Br anson)을 방문하여 이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, 가신 분들 모두가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돌아오는 길에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말을 아낀 채 창 밖만 응시하며 왔다고 합니다. 뮤지컬의 위력을 이 때 몸으로 직접 체감한 김목사는 ‘ 이런 신앙적인 뮤지컬이 왜 뉴욕에는 없을까? 이 작품을 뉴욕으로 한 번 가져오면 좋겠다’ 는 생각에 그 때부터 여러 차례 이분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응답도 주지 않고 심지어 몇 번 직접 찾아갔는데도 번번이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.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약 7년 쯤 지났을 때 어느 날 이분들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. 자기들이 미주리 주에서의 공연 계약이 곧 끝나기 때문에 어디론가 옮겨가야 하는데, 오래 전에 자신들을 만나려고 했던 뉴욕에서 온 한인 목사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는 것입니다. 그 후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서 김 목사의 소개로 2004년 4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한국 초연이 이루어진 데 이어, 2005년 부활절 시즌에 뉴욕의 프라미스교회 새성전에서 뉴욕 첫 공연의 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. 당시 전 작품 중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부활, 승천까지 다룬 제 2부만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4일간 총 7회 공연에 연인원 7천명이 관람하였고, 같은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1, 2부 전 작품을 성황리에 공연한 바 있습니다. 그 후 이 작품은 죠지아 주의 아틀란타 프라미스교회(구, 안디옥교회)에서 2010년 1월과 12월에 두 차례에 걸쳐 연인원 5천 여명이 관람하였고, 2012년에는 뉴욕 할렘의 명소 중 하나인 아폴로 극장에서 가을 학기 개학을 앞둔 할렘의 어린이들을 위해 이틀간 4회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.

 

뮤지컬이 국내외 해외 선교의 효과적 도구로

뮤지컬이 4/14 윈도우 세대들에게 효과적인 선교의 수단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2011년에는 미국과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 두 나라에서 약 10만명의 어린이에게 복음의 광채를 환히 비추었습니다.
이듬 해인 2012년 6월에는 중미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돌에서 사상 처음으로 스패니시 버전으로 공연하였는데, 4일간 총 9회 공연을 통해 약 3만5천 명의 어린이들과 가족들이 참석하는 대성황을 이루면서, 이 작품에 담겨진 복음의 능력은 언어와 민족을 초월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. 이 성과에 힘입어 2014년 2월에는 남미의 콜롬비아의 국경 도시 쿠쿠타에서 스패니시 버전으로 공연하였을 때, 사흘 간 5회 공연을 통해 약 3만 5천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두시간 동안 숨을 죽여가며 이 작품에 몰입하였습니다.